#김포 장릉
조선왕조 500년 왕과 왕비 및 대한제국 황제까지 무덤이 온전히 보전되어 있는 게 세계사에 드문 일이라 북한 소재 능 2기를 제외한 40기가 조선왕릉으로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되었다
장릉은 동일한 명칭으로 영월(단종의 능 ), 파주(인조와 왕후의 능), 김포(인조의 생부 생모의 묘)에 세 개의 능이 존재한다.
임란시 선조를 대신해 종횡무진 활약했던 광해는 조선의 15대 왕으로 즉위하여 대동법과 호패법 같은 획기적인 정책을 실시하고 당시 저무는 명과 일어나는 여진(청) 사이에서 실리외교를 추진하였다. 이게 당쟁이라는 소용돌이 속에서 결국 인조반정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고 후에 사대주의와 명분에 치우쳐 명을 지지한 인조와 대신들은 정묘, 병자호란을 겪으며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게 된다.
인조는 왕이 된 후 부친과 모친 구 씨의 묘를 한 곳으로 모아 홍경원이라 하였다가 후에 왕권의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자 원종과 인현왕후로 추존 후 장릉(김포)으로 높여 부르게 되었다.
나란한 향로(제례물품을 들고 가는 길)와 어로(왕의 길)를 지나면 역대 왕에 향을 올리던 정자각이 나오고,
정자각 뒤로 흙이 흘러내리지 않게 좌우에 세운 호석(문, 무석인) 사이로 보이는 2기의 능이 원종과 인현왕후의 묘이다.
그 외 원형이 비교적 잘 보전된 제려 물품을 보관하던 재실과
연지와 조금 아래의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다.
< 장릉에서 >
늦가을 색기 잃은 단풍을 보니
전란 후 총기 잃은 조선이 보인다
거대한 대륙의 기상을 가졌으나
왜소해져 왜소해져
움츠리기만 했던 나라
이익 없는 사대에
해법 없는 당리당략에 막혀
세종도 광해도 정조도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 못했으니
그만큼 만백성의 시름만 더해왔다.
현명한 군주는
만백성의 꺾인 허리를 펴게 하고
어리석은 군주는
온 나라에 고난을 안겨주는 게
어찌 예나 지금이나 다르다 하리오
하기사
교리와 논쟁에 맹종한 조선이나
이념과 대립에 진흙탕인 지금이나
거기서 거기겠지만
최소한 해묵은 사상이
물결을 막아서진 말아야지
임금이
일부를 위한 나라를 꿈꾸면
나라 전체가 위태로워지고
전체를 위한 나라를 꿈꾸면
세상이 반석 위에 서니
위기는 시대가 아니라
몇몇의 사사로움이면 도래하거늘
어찌하여
네 편 내 편만 따지다가
정작 중요한 건 뒷전이란 말인가?
파랑이 좋아 빨강이 좋아
그게 뭐가 중요한지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엄빠면 되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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