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금오서원
(경북 국가유산 제60호, 사액서원)
문화재청이 일제의 잔재를 버리고 국가유산청으로 거듭났다.
이에 따라 문화재란 명칭은 국가유산으로 바뀌게 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구미시 선산읍에 위치한 금오서원은
은 고려말 대학자인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오산 자락에 지은 서원이다.
후에 김종직 장현광 등 4인의 학자가 추가로 배향되었고, 이 때문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도 보존된 서원중 하나이다.
임란 때 의병의 임시지휘소로 사용된 바 소실되어 방치되던 것을 1602년 선산부사와 유림들의 주창으로 선생의 고향이 보이는 현 원리 남산 자락으로 옮겨 재건하게 되었다.
부속건물로 금오서원 관리를 위해 지어진 보존회 건물이 있으며,
그 옆으로 서원을 보좌하고 지역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뜻있는 두 분의 사비로 지어진 남산실과 청아제가 있고
뒤편 언덕에 금오정이 있다.
금오정으로 오르는 데크길 입구에는 공덕비가 있다.
금오서원 안내판 옆에도 당시 선산부사 김사철 공덕비가 하나 있는데(선산향교에도 있음) 후에 그는 친일파로 변신 일본으로부터 귀족작위를 받고 은사금까지 받았다고 한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이런 자의 칭송비석이 전통 향교와 서원앞에 버젓이 서있다는게 대한민국 갈길도 참 멀다.
(나라 팔고 백성 고혈 짜내어 부귀를 누리는 친일파와 탐관오리들은 제발 입 좀 닥치고 쥐 죽은 듯 살아줬으면 그게 유교에서 말하는 "염치" 란 거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로 시작하는 회고가의 주인공 길재는 정몽주로부터 시작되어 조광조까지 이어지는 사림의 계보를 계승한 거목 중 한 분이다.
조선 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는 문구는 여기서 유래한다.
경북 국가유산인 금오서원은 전학 후묘의 형태를 지닌 전형적인 서원의 모습을 지녔다.
출입문 격인 외상문 읍청루이다.
읍청루를 지나면 기숙사격인 동재와 서재, 정면에 정학당이 보인다.
정학당 뒤로 내삼문을 지나면 제사를 지내던 상현묘(사당)와 전사청(제례음식을 준비하는 곳) 이 있다.
주자학의 시류를 타고 우리나라에 들어온 유학은 제도와 문화등 많은 부분을 개선시켰지만.여말선초에는 신구세력이 격돌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후에는 뿌리깊은 논쟁과 당쟁의 중심에 있었다.
현 영남의 꼰대 기질은 여기로부터 일정 부분 답습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정치 부분에서는 과할 정도이고), 또한 시류를 읽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 일본에 36년의 나라를 잃게 하는 원인도 되었다.
모든 것에는 순기능과 역기능이 있다.
일신우일신 하지 못하는 온고이지신 하지 못하는 학문이나 문화는 점차 사람들로 부터 외면받게 되고 그걸 대채한 신학풍이 그 빈틈으로 차고 들어오기 마련이다.
日新(일신)만 하고, 溫故(온고)만 하며 현재의 편안함에 빠져 又日新 (우일신)과 知新(지신)을 잊고 사는 건 아닌지 우리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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