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만해 한용운 님의 "님의 침묵" 중의 일부이다.
한용운은 이별에 대한 소해를 님의 침묵이란 글을 통해 짧게 피력했다.
여기서 이별은 서로간에 신뢰가 없어지지 않은 상황하에서 다른 이유에 의해 부득이하게 이별을 하게 되며, 한용운은 헤어질 때 다시 만날 것이라는 전제를 두며, 이별이 만남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고 말한다.
이에 반해 사랑하는 사람들이 통상적으로 겪게되는 이별은 깨어진 신뢰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자연 다시 만날 거라는 희망 또한 없다. 헤어짐이 두려운 건 아름다운 기억들을 잃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다. 어느 날 문득 손에 잡힌 손수건. 한참 동안 멍하니 손수건을 만지작 거리고 나서야 손수건이 말 그대로 손을 닦는 용도 외에는 더 이상 필요치 않음을 알게 된다. 손수건뿐 아니라 내 주변의 작은 소품들조차 원래의 용도 외에는 필요치 않음을 느낄 때 우린 헤어짐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체념하게 된다. 화려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떨어진 꽃잎처럼 헤어진 그들에게도 한때는 아름다웠던 지난날이 있었음을 어렴풋이 기억하게 해 줄 뿐이다.
한용운 님의 시 일부를 옮긴건 헤어짐을 말하고자 함은 아니다.
단순히 남녀간의 사랑을 말하는 것 같지만 여기서 님 이란 조국이다. 온 국민이 바랬던 조국의 독립.
역사기행 만해 한용운 편을 본 적이 있다.
통상 남향으로 짓는 집들과 달리 한용운의 고택은 북향으로 지어졌다한다. 그건 조선총독부가 남쪽에 있어 함께 마주 볼 수 없다는 만해의 의지였죠
한 번은 절친이었던 해에게서 소년으로의 작가 육당 최남선이 일본에 전향을 하자 육당과의 절친을 끊는다고 선언하죠. 출감 후 거리에서 육당과 마주친 만해, 육당이 반가워하며 인사를 하자 모르시는 사람이라 외면했다는 만해의 행동이 그가 얼마나 독립된 나라를 원했는가를 보여주는 사례죠.
한용운과 같은 열사와 지사들 지식인들의 노고 때문이어었는지 조선은 1945년 8월 15일 해방이 되었죠
권력에 눈멀어 자신의 지지기반이 절실했던 이승만과 효율적 통치를 위한 미군정의 합작은 결국 일제에 협력한 이들을 처벌 없이 학계, 법조계, 군과 경찰, 검찰, 법조계등 모든 분야에 그대로 등용시키죠..
군(육군 참모총장 1~ 13대까지를 일본군 장교출신의 친일한인들이 역임)과 경찰 경위급 간부의 7할이상이 , 춘추관에서 역사왜곡을 담당했던 역사가와 학자가 그대로 학계를 이어받았죠. 이러한 상황하에 김구를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이 외면당한 건 필연적이었겠죠.
우리의 일제식 군문화,경찰문화,지금의 정치와 검찰의 유착등의 문화가 과거의 공권력에 대한 두려움과 맞물려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죠.
일본에 협력해 동포들을 전장으로 내몰고, 위안부로 내몬 위인들이 해방된 조국의 지도층이 되었고, 이들은 일본이 남긴 적산재산의 주인이 되었죠. 이들은 이 막대한 부로 권력을 잡았고, 기업을 만들었죠.
이렇게 보면 새누리당(국힘의 전신) 김무성의 부친이 조선임전보(일본군 자원입대와 근로봉사, 군위안부 동원을 독려하던 친일단체) 임원이었단 사실이 놀랍지도 않죠. 한때 김무성을 대통령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니 어디 그뿐인가요? 친일파 정인각의 후손 정진석(국힘) 이 다시 목소리를 내고 있죠.지금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어 있는 최남선의 시를 다음세대가 배우고 김활란의 삶이 위인전기로 둔갑되어 읽혔죠.민주당에도 친일파가 없는건 아니겠죠.그래도 용서가 되는건 뉘우치기라도 하고 조상이 저지른 잘못된 과거를 청산하려고는 한다는 겁니다.그럴 생각이 없는 국힘 친일파 후손들과는 달리...
자신의 치부를 덮기 위해 친일파들이 선택한 대한민국 교육의 민낯이죠.
이런 이승만을 국부라니
일본 관동군 장교를 지낸 백선엽을 국립묘지에 안치하자 하다니
공은 공이고 과는 과인데,개가 웃을 일이죠.
이승만의 눈에 가시였던 김구는 암살계획에 의해 서북청년단 소속이던 안두희에게 암살당하고..(안두희는 그 처벌은 커녕 보호를 받으며 호의호식 하다가 결국 정의의 몽둥이에 맞아 디지죠)
* 서북청년단은 해방 후 북에서 남하한 이북출신들의 순수한 애국모임으로 만들어졌으나 후에 건달들이 합세하고, 정치권력과 합세하면서 뒷정치 청소를 담당한 폭력단체로 변질 문민정부 참여정부 당시 그 세가 잠시 꺾였으나 이명박과 그리고 박근혜 집권 이후 이들의 은밀한 배후지원을 받으며 과거의 정치깡패짓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기사에 많이 등장했을 겁니다. 관심이 없어 제대로 안 봤겠지만)
이후 친일청산의 문제는 계속 제기되었고, 친일청산을 다시 막은 사람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죠.
박정희(일본명 다까끼마사오)는 일본 관동군장교출신으로 일본군에 입대하기 위해 천황에 충성혈서까지 썼죠. 해방 후 여순반란 사건시 박정희는 반란의 주동자로 몰려 처형될 위기에서 다행히 살아남죠.(이때 뒤를 봐준게 백선엽이라죠) 어찌 되었건 그 과정에서 그의 형은 주범으로 몰려 죽게 되죠. 이것 때문이었는지는 몰라도 박정희의 이승만정권과 친일세력에 대한 적개심은 컸겠죠. 박정희는 5.16 이전 두 번의 혁명을 계획했다 포기했죠. 부패한 이승만정권과 친일잔재를 청산하는데 있어.장면 정부가 제대로 수행할 능력이 없다고 보고
결국 박정희는 세 번째 혁명에서 성공하지만, 이후 친일청산을 포기하죠. 안정적 국정운영을 위해 사회 전반에 둥지를 틀고 있는친일세력들과 손을 잡은 거죠
다시 세월이 흘러 전두환 노태우를 거쳐 다시 김영삼 그리고 김대중 때에 이르러 다시 친일청산법이 국회표결에 부쳐지지만 결과는 아시죠. 다수당인 한나라당(국민의 힘의 전신)국회의원들 99% 반대로 부결되죠, 노무현 때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어 우리가 잘못 알고 있던 인물들의 친일행각이 드러난 거죠
그리고 역사는 흐르고, 그의 딸 박근혜가 대통이 되죠. 그녀는 그의 부친이 그렇게 싫어하던 이승만을 국부로 만들려는 극우보수주의자들의 지지기반이 되어주고, 김구선생을 암살했던 서북청년단은 이때 다시 등장합니다.문재인 으후 잠시 잠잠했지만 윤석열 정부 들어 대한민국의 근간이 되어있는 친일세력들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반세기 이상 그들이 사용했던 이데올로기 갈등이라는 배를 교묘하게 대한민국 속에 띄워놓은채로...
참 웃기죠
역사는 돌고 돌아 벌써 해방 후 70년이 넘었지만 우리는 아직 이데올로기 속의 현재에 살고 있죠
그들이 가진 걸 놓지 않으려는 이념 장단에 아직도 현혹되어 살며 자신은 애국자라 여기며 살아가죠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 한다는 말 우리 국민들 특히 나이 든 분들에겐 딱 맞는 말이죠
그나마 충청도분들은 선거 때마다 캐스팅보드 역활이라도 하지만,표를 통해 엄정한 심판이라도 하지만. 여야 안 가리고 잘못된 거에 대해선 표로 응답하죠. 충청도의 표심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요?
홀대받은 전라도 분들과 상대적으로 혜택을 받은 경상도 분들의 의중의 차이는 있지만 아직도 지역감정에 매몰되어 오로지 묻지 마 투표를 하는 경향이 있는건 사실입니다.
정말로 심각한 건 아직도 종식되어 가는 이데올로기에 내 생각마저도 저당 잡힌 무지한 이 땅의 많은 국민들입니다.
역사를 제대로 알면 그 해법이 보입니다.
독버섯은 무지와 무관심을 먹고 자라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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