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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성 가볼만한곳 ] 의성 탑리 오층석탑과 빙산사지 오층석탑

역사와시사/문화유산 답사기

by 이즈원 2023. 2. 16.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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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탑리리 오층 석탑
#의성 빙산사지 오층 석탑
#신라의 골품제도
#골품제(성골과 진골)

탑리 오층석탑

부족연맹체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여러 부족이 연맹을 맺고 세력이 큰 부족의 족장이 다른 부족장의 추대에 의해 왕이 되고 다른 부족장들은 걸맞은 자리를 차지해 왕을 보좌하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신라도 예외는 아니어서 거서간 차차웅 이사금으로 명칭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왕은 각 부족들을  대표하는 맹주로서의 위치일 뿐 전시나 유사시 필요에 따라 각 부족의 의견을 듣고 필요한 물자와 군사적 지원읠 받아 대책을 마련했다.
자연 세력이 커진 부족들의 왕권에 대한 도전 위협은 늘 상존했었고, 왕의 정통성 문제는 왕권과 결부되었기에 근친혼이나 계급 제도를 두어 이를 견제해 왔다.

골품제도란  왕가의 혈통을 유지하기 위한 계급제도로 신라는 왕족과 귀족에 엄격한 차등을 두었다.

탑리 오층석탑

이를 위해 초기부터 근친(족내혼 또는 씨족혼)을 제도화하며 성골 (부모 모두 왕족)을 통해 왕위를 세습해 왔다.
하지만 후기에 이르러 대가 끊기고 여왕시대를 지나며  태종무열왕에 이르러 진골 (부모 한쪽만  왕족) 왕이 나오게 된다.
결국 이러한 골품제도는 진골 이하 6두품의 불만을 야기 신라 패망의 한 원인이 된다.

주) 신라는 8대까지 박혁거세의 박 씨 계가 16대까지 석탈해의 석씨계가 왕이 되었고, (중간에 잠깐 2대 석탈해, 13대는 김씨계의 미추가 왕이 되었으며), 17대 내물왕부터는 김 씨 계가 왕이 되며 강력한 중앙집권의 나라로 기틀을 잡으며, 진흥왕에 이르러 본격적인 성골시대를 열게 된다.

탑리 오층석탑

국보 제77호로 지정된 탑리 오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높이는 9.6m이다.
각부의 석탑재가 거의 완전하며, 접탑(전탑)의 수법을 모방하고 있다. 탑의 일부가 목조건물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우리나라 석탑 양식의 발달을 고찰하는데 귀중한 사료가 된다.

빙산사지 오층석탑

빙계계곡 근처에는 탑리리 오층석탑을 본떠 만든 빙산사지 오층석탑(보물 제327호)이 있는데
석탑은 고려전기에 만든 걸로 추정되며 , 벽돌을 정교하게 다듬어 탑을 쌓은 모전석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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