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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은 호국보훈의 달.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 안동 임청각

역사와시사/문화유산 답사기

by 이즈원 2026. 6. 1.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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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임청각
#보물 제182호
#석주 이상룡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안동 고성이씨 종택
#안동 법흥사지 칠층 전탑

고성이씨 집성촌

1984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옥은 영남산 동쪽 기슭에 위치한 고성 이 씨 탑동파의 종갓집으로 1700년대에 조성되었다.
전통기법으로 지어진 독특한  구조로 전통주택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된다. 


옛 법흥사지 자리에 세워진
법흥사지 칠 층 전탑은 목탑을 모방해 흙으로 만든 벽돌로 쌓아 올린 탑으로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탑이다.

 

법흥사지 칠층전탑

임청각은 조선중기에 형조좌랑이던 이명이 세웠으며 현판은 퇴계 이황이 썼다고 한다.


조선전기 가장 오래된 고택이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독립운동가의 가옥이다.


임청각은 독립운동가를 9명이나 배출한 가옥으로 상해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선생의 생가이기도 하다.
후에 고택을 매각한 후 전가족을 데리고 만주로 가 독립군 양성 및 계몽교육에 일생을 바쳤다고 한다.

안동 임청각

99칸에 이르는 큰 고택이었으나 1942년 일본은 경부북부지방의 자원 수탈을 위해 중앙선 철로를 개통하면서 독립운동가를 많이 배출한 장소의 맥을 끊기 위해 임청각의 앞부분을 관통해 열차를 지나가게 한다.


본채와 중채 그 아래 안채와 사랑채가 있으며 낙동강이 보이는 우물모양의 독립공간인 아름다운 군자정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자정

남녀의 위계질서를 뚜렷이 한 구조로 남성출입제한 공간인 안채와 관련해선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는데

임청각과 영남산

정면으로 보이는 영남산의 3 봉우리는 풍수학적으로 3명의 재상이 나온다는 예언과 맞닿아있는데 조선 중기 때 서생이 흥선대원군 때 유후조 두 정승(외손)이 나왔고, 신촌에 다선 아직 재상이 나오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상룡 선생이 세 번째 정승이라고도 하고, 철로가 없어지고 터가 복원되면 나오지 싶다고도 한다.


고택 내에는 이상렬 선생의  생을 조명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으며, 안채와 군자정은 영화 왕사남의 슬픈  촬영지로도 사용되었다.

기억하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들의 희생 위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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