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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로의 여행 8 ~ 민족시인 이상화와 사상가 서상돈

역사와시사/역사 제대로 알자

by 이즈원 2023. 2. 10.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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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대로의 여행 8
#이상화&서상돈 고택
#폰카+디카+신상+창고사진

격동의 시대 노블레스 오블리주 (가진 자의 사회적 도덕적 책무 ) 를 실천한 가문이 적쟎이 있었는데 이상화 선생의 가계가 그러하다.


이상화의 조부 이동진은 인재양성을 위해 우현서루를 세웠고, 부친 이시우는 독립운동에 자금을 댔고, 그의 네 아들은 부친의 뜻에 따라 민족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이런 가풍 때문인지 빠았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의 저자 이상화는 일본에 협조한 최남선 이광수와는 달리 일본에 굽히지 않은 대표적 민족시인으로 결이 다르다.


계산성당 옆에는 저항시인 이상화선생과 사상가 서상돈 선생의 고택이 있다.

서상돈  선생의 생가

사실 이상화 선생의 생가는 북성로 공구골목 근처였으며 , 고택은 그 후에 살았던 곳이다.

서상돈 선생의 고택

서상돈 선생의 출생지는 김천인데 그의 부친은 천주교 박해를 피해 경상도로 왔고 후에 서상돈은 대구로 이사와  정착하게 된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21일 서상돈 김광제 선생을 중심으로 일본에 빚진 1300만 원의 국채를 갚기 위해 일어난 민족운동이다
생소하겠지만 비슷한 시기 부녀자들이 주도한 금 모으기 운동도 있었다고 한다.

국채보상운동은 대한민국 최초의 시민운동이며 여성운동으로 2017 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대구는 2월 21일을 시민의 날로 지정하였다

서상돈 아우구스티노 동상

남산 천주교 대교구내에는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으며 교구설립에 기여를 한 서상돈(아우구스티노)의 동상이 있다.


대구 골목투어를 하다 보면 우리가 무심히 지나치는 많은 역사적 밞자취들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화려하고 재미난 곳만 찾는 요즘 세태이다 보니 인근에 이런 산 교육장을 두고도 그냥 지나치기만 한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피와 눈물로 지켜온 역사의 흔적들은 점점 더 사라져 갈 것이다.

애국심이란 게 어찌 보면 장엄한 용어일지 모르지만 그 출발은  작은 관심과 실천으로부터 시작되며 역사가 주는 교훈으로부터 우리는 오늘을 사는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결국 역사란 되풀이된다고 한다.
치욕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건 창피한 게 아니다. 잊고 모르는 게 창피한 것이다.


몇 번이고 같은 장소를 찾는 이유는 당장 사는 게 바쁜데, 너무 어려운데  역사는 무슨 이라며 피해버리는 부끄러운 어른의 대열에 서고 싶지 않기 위해서다.
그 안에 갈등과 분열을 해소할 해법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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