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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지 않는 역사의 내면을 들추어 보게하는 ~ 현빈의 하얼빈(부제 붉은 늑대사냥)을 보고나서

역사와시사/역사 제대로 알자

by 이즈원 2024. 12. 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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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레아우라 꼬레아우라(대한독립만세)
1909년 10월 26일 하벌빈에 울었던 안중근의 의거로부터 36년이 흐르고 대한은 1945년 해방을 맞았다.


독립지사들은 돌아오지 못했고 그들의 유해가 머나먼 이국땅을 맴돌 때쯤 독립운동이라곤 구한말 독립협회 활동 시 신문 주필로 활동한 이력이 전부인 이승만이 발 빠르게 한반도로 들어온다. 효과적인 한반도 지배를 위한 미국의 지원을 받으며 친일 덕으로 부귀영화를 누린 친일파들의 자금력과 영향력, 기독교계와 공산당에 피해를 입은 월남한 탈북자들 (서북청년회)의 은밀한 지지를 등에 업고 당시 지배층을 포섭 (일부의 독립지사가 포함됨) 민주공화당이 창당된다. 70년 전 국민의 힘의 전신이 이렇게 탄생된다.
당명만 바뀌었을 뿐 집단이 내세우는 가치는 그대로다. 애국 애족을 기치로 내세우지만 국가지상주의와 개인의 자유를 외치지만 내용은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부에 대한 통제가 아닌 자유중 경제적 자유를 더 중시한다.
여기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게 반공이다.
창당 이후 반공은 집단을 대변하는 중심 철학으로 수십 년간 교육되었고, 첨예한 이데올로기 시대 아수선한 정국과 군사정권에 있어서도 효과적인 통치와 국민 설득을 위한 도구가  되었으며, 80년대 들어서서는 이데올로기의 종말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남북대치 상황과 맞물려 한국보수의 핵심 어젠다가 되고 있다.
문제는 현대민주주의가 강조하는 여러 원칙들이 종종 자유와 반공이라는 가치에 매몰된다는 점이다. 자유와 반공 논리는 현대민주주의 국가들과 비교할 때 종종 엇박자를 냈고, 지나친 좌우 대립 논리는 점점 퇴색되어 갔다, 이런 점이 점진적으로 보수의 지지층을 한정된 지역과 계층에 머물게 만들었다. 여기에 극우로 기운 세력들이 합류하며 오늘날 원래의 보수적 정체성을 잃어버리게 되었고 급기야 정의나 공정 상식 같은 일반적 개념들을 좌파적 논리 하나로 뭉개는 시대착오적 발상들로 다수의 국민들에게 외면받는 단초를 제공하였다.

윤석열로 촉발된 계엄은
개인 생각이지만 극우화된 보수의 실체라 이해해도 될 성싶다

어둠은 짙어오고 바람은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어떠한 역경이 닥치더라도 절대 멈춰서는 안 된다. 금년에 못 이루면 다시 내년에 도모하고, 내년, 내후년, 10년, 100년까지 가서라도 반드시 대한국의 독립권을 회복한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이다. [ 하얼빈의 엔딩 내레이션 ]


하얼빈 의거로부터 115년이 흘렀다.
대한민국의 통합과 단결은 출발은 잘못되었지만 경제성장이라는 뚜렷한 성적표를 낸 박정희 대통령 이후 기대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낸 채 보수정권에서 사라져 버렸다.
과거의 경제정책에 함몰되어 세계사적 변화의 기회를 놓쳐  IMF사태를 맞았고, 이명박에서 시작된 블랙리스트 파동과 선거결과를 바꾸려는 선관위 서버 공격등과 성과만을 강조한 보여주기식 정책들을 위힌  언론방송 장악과 자신들의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국정농단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만들었다..
윤석열 정권은 전두환의 군부독재와 이명박 박근혜로 이어지는 국정운영 난맥상이 총망라된 위불법의 완결판이라고 이해해도 되지 싶다. 현 윤석열 장부와 정부기관에는 이미 퇴물로 낙인찍힌  과거의 인사들이 대거 복귀해 한 자리를 차지하고있다.대통령만 바뀌었지 이명박 이후 국가운영은 그 밥에 그 나물로 채워졌다는 말이다.

통합을 위한 수단이 정권을 잡기 위한 목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기반 위에서 더 나아가야 하지만 시기마다 발목을 잡는 게 포장된 애국 안보 논리였다. 오히려 이를 기반으로 지역갈등 세대갈등에 젠더갈등(성대결) 같은 국론분열이 보수정권에서 극대화되었고, 반쪽짜리 나라마저 매번 갈라치는 양상으로 차닫게 하고 있다.


조선이란 나라는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하는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야. (수백 년 전 임란 때 의병들이 그랬고)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단 말이야. [영화 속 이토오 히로부미 대사 중]

위기 시 한반도를 하나로 묶었던 통합의 기치는 보수정권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이미 반세기 넘게 갈등과 분열을 통한 갈라 치기를 통해 권력을 잡은 보수정권은 정상적 방법으로 선거에서 이길 수 없었고 이는 또 상식이하의 대립정치에 그들 스스로를 빠져버리게 만들었다..

영화로 돌아와서
1908년 신아산 전투에서 승리한  대한의군의 참모중장 안중근은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로 잡은 일본군을 풀어주게 되고 이것으로 동지들을 잃게 된다. 구사일생으로 돌아온 안중근을 동료들은 의심하게 되고...
그로부터 1년 후 안중근과 동지들은 하얼빈으로 향한다. 죽지 못하고 살아온 그때 단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다.
일본의 조선 지배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상호 인정하는 카쓰라태프트 밀약 이후 조선의 지배를 더 공고히  하기 위해 을사늑약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가  일러 상호조약을 회담을 위해 하얼빈에 온다는 정보에 따라 그를 척결하기 위해서다.
하얼빈은 안중근이 이토오 히로부미를 알 삼하기까지의 과정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왜 영화 하얼빈 감상후기 포스팅에 이런 시대적 역사를 끼워 넣느냐에 불편한 분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이다.
이 역사를 알아야 영화의 대사들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목숨은 먼저 간 동지들이 이어주는 거라는 대사는 마치 먼저 간 순국선열들이 피로써 지킨 나라를 잘 보전해야 한다는 논리와 맞닿아 있다.
좌우논리에 매몰된 우리는 순국선열이란 용어를 단지 6.25의 국군장병만을 의미하는 것으로 종종 혼동할 때가 많다. 반공 교육이 만든 웃기는 우리의 현주소이다. 아니다. 몇백 년 전 선조들 그리고 구한말의 의병, 독립운둥가, 해외 파견 광부와 간호사, 산업화의 역군들, 민주화 투사, 알려지지 않은 의인들까지 모두 위기 때 대한민국을 위해 수고하고 온 힘을 다한 순국선열들이다.
이제 그 공은 우리에게 넘어왔고 우리가 더 좋게 만들어야 할 차례이다.
대한민국이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위정자들의 부끄러운 행태에 순국선열을 대신해 매서운 회초리를 들어야 할 시점이 지금인 것이다.

역사의 죄인들에게 어설픈 용서는 금물이다. 단죄하지 못한 잘못된 역사는 계속해서 반복되기 때문이다. 이제 그 고리를 끊어야 한다.대한독립만세는 현재진행형이다.

1910년 3월26일  뤼순 감옥에서 형장의 이슬이 된다.그의 나이 향년 30세였다.
도마 안중근 의사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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