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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그리고 회의 다시 제자리에

일상이야기/살아가는 이야기

by 이즈원 2024. 12. 20.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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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 연을 맺고 살아가면서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일까?

그건 아마 익숙함이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간이 아닐까?

 

기대감반 설렘반으로 함께 살며 부대끼고, 자신이 탁월하게 선택한 인생이라 자부했지만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이 도중에 스스로 선택한 삶을 포기해 버린다.

처음엔 그 사람의 밥 먹는 모습까지도 서로 다른 생활습관까지도 내 물음에 시큰둥한 대답을 해도 그것마저도 이해할 줄 알았는데 갈수록 상대방이 싫어진다. 아예 폭력을 행사하거나 바람을 피웠다면 모르겠는데 그냥 이유 없이 싫어지는 것이다. 자신도 그 이유를 모른다. 그냥 생각하기 싫은 것이다.

때로는 자기 자신이 왜 그런지 스스로가 더 궁금해하면서 말이다.

최근에 내가 찾은 답은 서로가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살면서 너무 익숙해져 버린 믿음 때문이 아닐까라고 답을 해본다.

살을 섞고 살면서 조심스럽던 행동 하나하나가 내 멋대로 해석된다. 아무 데서나 방귀를 뀌어도, 가끔씩 설거지를 빼먹어도, 휴일 늦게까지 늦잠을 자도, 회사일로 새벽에 늦게 귀가해도 당연히 이해해 주리라 믿었는데, 심지어 샤워 후 노팬티 차림으로 앞을 지나는 것조차 이해해 주리라 확신했는데....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너무 익숙해져 버린 나머지 상대의 존재감을 잊어버린 것이다.

이 말은 완전히 믿는다는 것이다. 내가 뭘 해도 당신은 날 이해해 줄 거라는 믿음이 더 이상 감추고 숨기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당연히 이해해 줄거라 믿는 당신의 퉁명스러운 핀잔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가 아주 기분을 더럽게 만드는 것이다. 당연한 믿음에 대해 배신당한 것처럼 느껴지고 갑자기 비교 아닌 비교를 하게 된다.

내가 아는 사람의 남편과 혹은 아내와 비교되는 것이다. 연애할 때 내가 느꼈던 립서비스와 사랑표현이 우리에게는 없고 남의 남편과 아내에겐 일상처럼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이다.

나는 왜 이렿게 살까? 란 물음이 계속해서 생기고, 어쩌다 다정스럽고 부드럽게 말을 걸어주는 타인의 배려에도 내 배우자와 비교그래프를 그리는 것이다. 연애시절의 아름답고 잘생긴 그 사람 그대로인데 자신은 아직도 쓸만한데 내 가치를 몰라주는 배우자에게 섭섭한 것이다. 한순간 잘 나갈 수 있는 나를 요 모양 이 꼴로 만든 게 당신이란 사람을 만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원망하게 된다. 이 원망은 내가 오랫동안 믿었던 그 익숙함을 송두리째 날려버리게 한다.

생전 할 줄 몰랐던 불평불만을 하게 되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이유 없이 푸념과 볼멘소리를 습관처럼 되뇌고, 한편으론 이런 자신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며, 자신에게 화가 나고, 자신도 통제할 수 없는 표현과 행동을 거침없이 하고, 자신 또한 그만 멈췄으면 하고 바랄 뿐이다. 다시 되돌리고 싶고 아예 없는 사실이었으면 안 될까 라며 습관적으로 몰라 몰라의 신경질적인 추임새를 쉴 새 없이 반복한다. 이성으로 통제되는 자신의 감성에 믿음이 축적되면서 통제시스템을 마비시켜 버린 것이다. 당신은 당연히 날 이해해 줘야 하는데 왜 날 이해 못 할까? 섭섭함을 넘어 뭔가 치명적 손해를 당한 것 같은 비참함이 자신을 가득 메운다.

문제는 자신이다. 자신조차 너무나 익숙해버린 믿음의 정도가 나는 이해받아야 할 당사자지만, 상대방은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내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 어떤 대화와 행동도 막아낼 아주 견고한 방어벽이 자신의 주위를 감싸고 있다.

이미 들을 맘이 없는 자신에게 모든 대화와 몸짓은 공허한 메아리처럼 튕겨나간다. 급기야는 나 자신이 용서되지도 않지만 그럴수록 미로처럼 점점 깊이 빠져든다. 그럴 때는 그냥 가만히 있어야 된다. 화내고 거부할 이유가 없다. 그냥 무덤덤하게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된다. 어렵겠지만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려 해야 한다. 내가 굳이 온몸으로 티 나게 거부할 필요가 없다. 그게 더 이상한 것이다.

살면서 한 번쯤은 삶의 염증처럼 누구에게나 찾아올법한 회의.

나는 그래서 말하고 싶다.

그대로 받아들여라 밀려온 파도는 반드시 바다로 다시 돌아가고, 파도에 부서진 모래성은 잠시 부서진 것뿐이다.

모래성을 쌓을 시간과 모래는 쌓고도 남을 만큼 많은데

파도가 또 오면 어떠하리 나는 또 쌓으면 되는걸

인생이 다 그런 것 아닌가? 단지 지쳐버린 내가 잠시 모래성 쌓는 일이 귀챦아 졌을 뿐인데..

나는 어제도 그런 것처럼 완성된 모래성을 바라보며 환호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당신의 행복한 미소에 예전처럼 미소 지을 건데 잠시 난 파도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야

햇빛에 빛나는 파도의 눈부심과 나의 모래성과 비교도 되지 않는 커다람, 바다와 바람에 실려 자유롭게 넓은 곳을 여행 다니는 파도가 부러웠던 나머지 잠시 파도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야. 파도도 때때로 검은 하늘과 폭퐁우도 만나고, 가끔은 자신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서 외로움을 삭인다는 걸 잠시 잊었을 뿐이지.

보이는 것에 비하면 보여줄 수 없는 사랑이 너무나 큰 것임을 겪은 아픔을 통해 좀 늦게 깨닫는 거뿐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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