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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 2024 이것만 알아도 선택이 쉬워진다

역사와시사/상식 이 정도는 알아야

by 이즈원 2024. 3. 22.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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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와 진보

양대진영 간 극명하게 대립된 구도가 이번에도 재판될 조짐이다,
진보와 보수 많이 듣는 개념이지만 설명하기엔 나름대로 해석이 다르다.


내 분석으로는 지금 상황에서 개혁신당 같은 제3지대나 정의당은 진보에 가깝고, 더불어민주당은 보수, 국민의 힘이나 자유통일당등은 극우에 가깝다. 물론 각자의 견해는 다르지만 인생경험으로는 그러하다.
진보성향을 표현하는 게 아마 日新又日新 (일신우일신)일 것이고 보수성향을 표현하는 게 溫故而知新(온고이지신) 일 것이다.
한자숙어의 뜻이야 웬만하면 다 아는 내용일 거고, 이대로만 진보와 보수가 나아간다면 더 바랄 게 없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그건 보수와 진보의 개념자체가 도입초기부터 이데올로기와 결부되며 잘못 이해되어 왔고, 잘못된 역사교육의 부재 속에 주입된 채 오랜 기간 관념으로 쌓여왔기 때문이다.


보수를 정의하는 키워드는 점진적 개혁, 경제, 안보, 국가, 자유, 이념 같은 부분일 거고 진보의 키워드는 변화, 국민, 행복, 평등, 민주 같은 것 들일 것이다.
이런 양대진영의 키워드는 정책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정쟁을 위한 이슈 거리로 부각된다.
세월호나 중대재해법 같은 법안 및 복지 관련 포퓰리즘 논란까지...

대를 위해 작은 희생은 덮고 가자는 보수와 작더라도 국가가 짊어질 의무라는 진보의 견해차는 명백해 보인다. 또한 외부의 적에 대해서도 공통분모는 있지만 진보는 미일을 보수는 북을 더 공공의 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쨌든 주관적 생각이니 그냥 봐주시고, 하지만 최근 여러 해를 볼 때 이런 양대진영의 관념들은 많이 혼동되고 혼재되어 나타나는 게 다반사이다.


1300만을 돌파한 '서울의 봄' 많이들 보셨을 것이다.
최근 들어 이승만 대통령을 미화한 건국전쟁이 화제에 올라있다.
서울의 봄을 예로 들면
괴벨스의 논리처럼 그 안에도 진보와 보수 중도가 섞여 혼재되어 있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인간군상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전두광 같은 권력 지상주의자들, 신원식 국방장관 같은 눈치파, 수경사령관 이태신 같은 소신파들까지... 12.12 이후 수십 년이 흘렀지만 그 인물의 시대만 달리 한 버전들은 그대로 이어져 오고 있다.
당시로 돌아가보자.
목적을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전두광의 무리들, 정해진 법과 원칙을 따르려는 이태신을 비롯한 일단의 사람들, 그리고 이도저도 아닌 중간파들과 그 사이에서 이긴 편에 줄 서려 갈등하는 인간군상들.
전두광과 그를 따르던 자들 국가보다는 개인의 안위를 더 생각하던 자들의 집단체가 지금 우리가 보수라고 일컫는 정당의 구버전이었고, 그나마 법과 양심의 사이에서 갈등하던 사람들의 집합체가 현 민주당이 아닐까?
물론 그 이유로 민주당이 국민의 힘보다 월등히 좋다는 말은 아니다.
좀 더 국가와 국민을 위한 정치에 근접해 있다는 말이다.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반대편 진영이 어떡하든 피해를 최소화하고 상생하는 여건을 만들려고 한 반면 틈만 나면 안보를 부르짖지만 급하면 전방부대까지 빼어 내전이라도 불사하려는 그들의 안하무인 한 행동들을...
그 잘못된 행위들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세상은 김오랑 소령 같은 그나마 별 볼 일 없는 세상이라도 인간의 생각을 가졌던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
승리한 자가 영웅이 되는 역사라지만, 정당성과 명분 수단이 답보되지 않은 승리는 결국 그들만의 리그며 소수에 한정된 행복일 뿐이다.


전두환에 대한 실체는 근자 들어 점점 밝혀지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아직도 그 때문에 우리가 예기까지 왔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먹이며 그들의 행위에 면죄부를 주자는 사람들과 역사적 범죄에는 반드시 합당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다시 이념으로 갈려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썩은 나무는 썩은 부위를 도려내지 않고는 재생되기 힘들다. 현재 우리 사회가 직면한 사회적 정책적 이념적 역사적 문제의 근원도 결국 썩은 부분으로부터 기인한다.
나라를 팔고도 면죄부를 받은 자들이, 그릇된 방법으로 정권을 찬탈한 자들이 그들에 기생해 행복을 누렸던 자들이 누렸던 것들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이슈를 만들어내며 갈등을 조장한다.
법이 붕괴되고, 금전과 권력에 충성하며 또 다른 아슈들을 만들어내며 갈등한다.
초두에 현 보수를 내가 극우라 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경제를 얘기하지만 건전한 경제를 만들지 않고, 자주를 외치지만 늘 외세에 의존적이고 민주를 외치지만 그 안에는 절차적 정당성이나 가치보다는 일단 넘어가고 보자는 식의 어영부영만 있다.
그걸 위해 언론을 장악해 여론을 왜곡하고 반대편의 비슷한 자를 솎아 그들과 동일시하는 작업을 수십 년째 끊임없이 해오는 소모적 논쟁을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노령연금 반대, 김영란법 반대, 사학법개정 방대 , 유치원 3 법 반대, 남북대화 반대, 다자녀가정 지원 반대, 친일청산법 반대, 용산참사 특별법 반대등 민생과 민심과 관련된 수많은 법들이 그들에 의해 장기간 표류하다가 반쪽짜리 정책으로 겨우 자리를 잡아가는 게 진행된 현실이다. 결국 그로 인해 이익을 얻는 소수는 보수의 편에 서고 피해를 입는 사람들은 진보의 편에 선다. 그 끝도 없는 싸움에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이 중도라는 무관심에 머문 채 정당성을 찾으려 한다.
원인은 한 가지 청산되지 않은 썩은 부분들이다. 그들은 그걸 놓지 못해 끊임없이 희생자를 양산하고, 제대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일단의 사람들이 다시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위해 그들의 편에 선 게 벌써 반세기다.
그들 중 누구도 제대로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은 적이 내 기억으로는 없다. 말대로 대를 위한 희생은 불가피하다지만 박정희 대통령 이후로 이명박도 박근혜도 윤석열도 국가통합보다는 분열에 더 맹점을 찍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국가와 민족보다는 자신과 따르는 무리들만의 행복한 세상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재명의 민주당이 낫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썩은 부분보다는 그래도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아 살릴 여지가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개인적인 일탈이나 작은 범죄들은 언젠가는 치유가 가능하지만 역사와 국가와 국민에 대한 범죄행위는 치유자체가 소멸되기 전까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024 국민의 선택이 중요한 이유다.
똥을 찍어먹어 보지 않아서 실수했다고 치자. 하지만 이제 여러 번 찍어먹어 봤으니 그만 찍어먹어도 좋지 않을까?
정당성과 명분이 답보되지 않은 정치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다.
국민은 파는 게 아니라 위하는 것이다. 진심이 없는 말장난에 이제 채찍을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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