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한 사람만이
뜨는 해를 볼 수 있다 하여
새벽부터 바지런함을 떨었는데
재수 없으니 바람도 맞나 보다
안개사이를 헤치며 달려왔건만
신륵사의 일출은
시샘하는 안개의 심술로
눈 한번 마주하지 못했다
내 뜻대로 다 된다면
세상살이 참 신날 거 같지만
아무렴 어떠랴
겨울왕국의 하얀 보석들로
한껏 분위기를 자아낸
겨울산사를 볼 수 있었으니
그 또한 행복한 일이다.
아직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새벽
혹시나 많은 사람들이 와 있으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신륵사의 일출포인트인 강월헌으로 향한다.
강월헌으로 난 길 위를 비추는 가로등만이 찾아온 외부인들을 맞이해 줄 뿐이었다.
보물 제226호로 지정된 다층전탑을 뒤로하고 강월헌과 삼층석탑을 배경으로 하여 해가 떠오를 남한강 건너편에 포커스를 맞춘다.
안개가 너무 짙다.
일출을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은 점차 불안함으로 바뀌었고, 그 불안감은 현실이 되는 거 같았다.
일출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가늠할 수 없는 안개가 모든 걸 덮어버려 좀처럼 태양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마침내 포기
대신 본전이라도 건질 셈으로 강월헌 주변 이곳저곳에다 무자비하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다.
잠시 후 날이 환해지자 주변이 보였다.
웅장한 다층전탑과 서리가 꽃수를 놓은 상고대
설국이란 표현이 적합하진 않지만 마치 설국에 온듯한 느낌이 드는 건 새벽녘에 내린 서리가 신륵사 곳곳을 하얀 겨울왕국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하얗게 염색을 한 메타세쿼이아 나무
그 아래의 작은 갈래길들과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보석으로 치장을 한 겨울나무, 가지, 신륵사의 절간들과 지붕들...
자연이 배경이고 나무 자체가 그대로 작품이 되어있었다.
은은하게 산사를 휘감은 안개사이로 보이는 신륵사는 가히 이름만큼이나 멋진 곳이었다.
이런 광경을 놓치지 않기 위해 산사 구석구석을 두리번거린다.
극락보전과 다층석탑, 대장각기비, 조사당 등등
이제 잠에서 막 깨어나는 산사는
어린아이의 눈동자만큼이나 맑다.
진한 차향에서 나오는 은은함과 깊이도 있다.
사진을 담겠다고 전국을 다니는 건 아마 이맛 때문일런지도...
콘크리트 건물들과 차량들, 사람들 사이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분위기가 정말 좋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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