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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독교를 말하다

일상이야기/종교

by 이즈원 2023. 5. 10.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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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기독교의 역사
#문제는 그  안에 있다

유럽에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크리스트교는 철저하게 그리스와 로마의 전통과 철학을 따르며 성장했다. 로마가 쇠퇴기에 접어들자 교황 중심의 서로마 가톨릭은 왕과 교황이 상호 윈윈 하는 방식으로 발전했고 그게 오늘날 로마교황청의 모태가 된다. 동로마가 지배하던 나라들은 그리스의 철학과 융합되며 그리스정회로 분화되었고 북유럽 바이킹의 이동 경로를 따라 토착신앙들과 융합되며 정착하고 프로테스탄트 교리로 발전하지만 이 또한 교리의 해석을 두고 감리교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성공회등 여러 갈래로 나누어졌다.
미국의 기독교는 프로테스탄트교에서 파생된 감리교이다.


한반도와 가톨릭의 관계는 실학이 융성하던 17세기 후반부터 시작된다. 그 중심은 천주교였었다. 절대왕권 중심의 지배체제가 공고한 조선에서 초기 가톨릭은 체제 붕괴의 한축으로 지목되었고 세도 정치와 결부되며 희생양이 되어 수없이 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로부터 100년이 다 되어 18세기 후반 감리교가 등장하고 1893년 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그들이 선교를 위한 방법으로 선택한 건 낙후된 교육과 의료사업이었고 자연 백성들의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
독실한 크리스천들이 생겨났고, 그들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민족의 계몽과 낙후된 조선을 부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하였다. 하지만 선교가 목적이었던 선교사들과는 달리 기독교단의 생각은 많이 달랐다.


국모시해와 외교권 박탈 군대해산으로 이어지는 잇따른 일본의 침략마수에 의지할 곳을 잃은 백성들이 종교로 의탁해 올 것을 알았고 이를 조선 내 교세 확장의 기회로 여겼다. 민주주의를 채택했지만 제국주의적 성향이 더 남아 있었던 미국 정치권의 의중도 여기에 한몫 보태어졌다.
이러한 미국정계와 기독교의 생각은 대한제국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정치와 종교가 유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정치권은 백성들의 환심을 살 필요가 있었고, 기독교는 선교를 묵인해 줄 정치권력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기독교와 지배권력의 밀월관계는 미일의 상호이익이 부딪히지 않는 동안 지속되었고, 태평양 전쟁으로 잠시 거리가 생겼으나 해방 후 기독교는 미국의 신탁통치에 협조적인 이승만 정부와 쉽게 밀착함으로써 대한민국의 주류종교로 세력을 넓혀가게 된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진리로 인식되었고, 정치권은 이러한 기독교의 세력을 자신의 편에 세우려 했고, 자연 시간이 흐르면서 권력과 부는 교회로 집중되었고, 종교의 지지를 받는 신정치권력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새벽철야기도와 수요 금요 예배 주일예배에 부활절 연말연시 예배 등 셀 수 없는 예배가 당연한 듯 생겨났고 십일조를 넘어서 건축헌금을 비롯해 무슨 헌금 무슨 헌금등의 명목들이 추가되었다.
여기까지에 대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기독교가 초기 크리스트교의 이상을 벗어난 채 교회 안에 안주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성직자의 기본자세는 가난한 사람에게 빵 한 조각 던져주는 게 아니다. 잘못되고 모순된 사회구조에 대신해 목소리를 내어 주어야 한다. 정치에 관여하란 말이 아니다. 필요한 목소리를 내주란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이념이나 갈등의 극단점에 서 과거의 극단주의자들이나 정치편향적 꾼들이 내는 목소리를 내며 오히려 분열과 갈등을 조장한다는 게 더 큰 문제다.
버젓이 탄신제가 예배시간에 거행되고(제사금지원칙위배), 이념갈등을 공공연히 내뱉는 자들이 나타나고(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위배) 극우 목회자가 총리후보로 거론되기도 하였다.
전광훈 같은 자가 한기총의 회장이 된 적도 있었고 현재도 정치에 어슬렁거린다.
문제는 여기에 대해 일부를 제외하고는 목회자 누구도 공개적으로 비판하는 등의 언급을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세력이 너무 커 언급을 할 수 없는 것인가?
이렇게 얘기하면 독실한 신자들 과 목회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자신만 열심히 신앙과 목회활동을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 부류도 있다 정도이다. 하지만 절대로 목소리는 내지 않는다.


그 옛날 예수님이 거리로 나가 행하던 참 종교의 의미를 지금의 성직자들은 잊은 듯하다.
불합리한 사회구조나 체제보다는 사랑과 용서만 강조하며 나만 잘하면 된다는 식이다. 너무 배타적이지 않은가?

서두에 기독교의 역사를 언급한 건 백여 년간 정치권력에 너무 맛 들여져 침묵은 악함보다 더 나쁘다는 걸 알려주고 대한민국 기독교의 현실을 말하고자 함이다.
기독교가 우리 사회에 지대한 공헌을 했음을 부인하기 위함이 아니다. 과거의 잘못된 행태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채 아직도 교회 내에서 실천하지도 못할 말씀만 강요하는 게 전혀 종교의 기본속성과 다르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다행인 건 천주교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목사님들이 시국선언에 적극 동참하며 현재의 시국에 대해 질타를 하는 모습들이 보여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행스러워 보인다.
덧붙이자면
다른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라고(목사나 신도의 성추행, 폭행 공금횡령, 불법승계등) 같은 하나님을 믿는 목회자나 신도가 우리만 잘하면 된다는 식으로 계속 침묵하는 건 옳지 않다. 천주교의 교세가 계속 확장되고 기독교의 교세가 계속 약화되는 건 어쩌면 종교의 기본원칙을 잊어버린 채 자기가 속한 현재의 안락함에 안주하기 때문은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박해를 받던 시기 예수님은 예배당 안이 아니라 밖에서 해답을 구했고, 살신성인의 자세로 십자가를 지셨다.
과연 지금의 목회자들은 예수님처럼 떳떳한가? 나는 감히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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