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에 남이섬에 갔던 적이 있었다. 한창 겨울연가 드라마로 인해 남이섬이 관광객으로 즐거운 비명을 지를 때였다.
드라마 촬영지였던 터라 낯익은 풍경도 풍경이지만 무엇보다 눈길을 끌던 게 60~70년대를 옮겨놓은 추억의 테마 장소였던 것 같다.(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옛날의 기억들과 먹거리, 딱지나 구슬 같은 것들이 너무나 반가워서 그랬는지도 모를 일이다.
내 기억 저편의 어린 시절 기억으로는 지금은 돼지국밥집들로 성황을 이루는 대구 중구 동인동 근처의 기억들, 그리고 중앙에 돌화단이 있던 신천동 주택, 신천 22 송라시장 입구의 2층집, 그리고 지금 구미시 지산동의 2층집이다. 그 당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무지 이사를 많이 다녔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산업화로 너도나도 대도시로 몰리다 보니 자연 집부족 현상이 심했고,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 거다.
우리 집 또한 그랬던 거 같다.
대구 수창국민학교에서 신천국민학교, 동신국민학교, 그리고 구미국민학교까지 숫자로 나누어도 한 학교에서 두 학년을 마친 기억이 별로 없다. 5번의 이사에 3번의 전학이었다.
희미한 기억들 속에서도 유난히 머릿속에 남은 것은 자연 내 또래 애들이 공유하던 먹거리가 아니었던가 싶다. 그리 먹을만한 게 넉넉하지 않았던 때였으니까...
지금도 그 맛을 잊지 못해 한 번씩 사 먹어 보지만 그 옛날 그 맛에 비하면 형편없어 보이는 것 또한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마 기회비용 때문 일거다. 상대적으로 지금은 더 맛난 게 많지만 그때는 그게 다였으니....
북구 공구상가 근처에 살 때 내가 즐기던 3대 먹거리는 날계란과, 콩국, 납작 만두였다.
간장으로 간을 한 납작 만두야 학교 앞 입구에 있어 누구나 즐기는 주전부리였지만, 계란과 콩국은 사실 비용 부담이 있는 음식 중 하나였다. 날계란은 계란 앞뒤에 구멍을 내어 계란 속을 빨아먹는 거였는데 지금 먹으라 하면 그 비리한 맛 때문에 못 먹을 것 같다.
콩국은 집이 조그만 전업사를 하던 터라 꼭 저녁시간 때면 우리 가게 앞에서 전을 펼치는 콩국 아저씨 덕에 엄마가 자주 사주어 먹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따끈한 콩국 국물에 적신 튀김은 가히 맛이 일품이었다.
놀면 뭐 하니 전국간식자랑 코너에 소개된 세연콩국을 보고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1년 반 만에 가보게 되었다. 옛날 그 콩국맛이 생각나서 참고) 세연콩국은 별도 주차공간 없음. 근처 남산공영주차장 이용(평일 주차요금 유, 공휴일은 무료이며, 50M 더 가면 원조 제일콩국이 있다 (주차장 있음)
점점 시들시들 해지는 육신과 닳고 얄팍해진 맘을 청춘으로 되돌릴 수 없지만 생각은 하기 나름이다.
토스트 하나와 콩국을 주문했다.
느끼한 맛이 싫으면 소금을 , 달콤한 맛이 당기면 설탕을, 더 고소하게 드시려면 콩가루를 적당량 치고 중간중간에 한 번씩 저어 드시면 된다
본격적인 먹거리 전쟁은 신천국민학교, 동신국민학교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이때 난 본격적인 유년기 기억의 70% 이상을 가진 것 같다.
먼저 항아리(달고나 혹은 국자)다. 설탕을 연탄에 올려 녹인 뒤 막판에 소다를 넣고 굳기 전에 판에 놓고 눌린 뒤 여러 가지 모양을 찍어낸다. 물론 찍어낸 모양을 부수지 않고 오려내면 무료로 한판더, 때로는 즉석에서 때로는 집으로 가지고 와 바늘에 침을 묻혀가며 모양을 끍어냈던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내 평생 그렇게 진지해본 적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별미는 쫀드기다. 보통은 연탄불에 즉석에서 구워준다.
가끔씩 학교 앞에 소위 야바위꾼이라 불리는 장사꾼들이 왔다. 5개 정도의 숫자를 막대로 지정하고 숫자통에서 뽑은 종이에 적힌 숫자와 일치하면 커다란 붕어모양, 용모양, 총 모양등 설탕을 녹여 굳힌 그런 걸 주었다. 요행으로 이런 거 한번 당첨되면 그날은 운수대통한 날이다. 가끔씩 집 앞으로 엿장수가 지나다녔다. 병이나 고철 같은 걸 가져가면 즉석에서 엿을 잘라 주곤 했다.
집 앞 송라시장 입구엔 널찍한 포장마차가 하나 있었는데 여기에선 10원만 내면 커다란 핫도그와 하루종일 무료로 만화를 볼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볼 수 있는 냉차 장사와 아이스케끼 아저씨 물과 얼음에 과일향과 색소를 넣은 냉차와 하드랑은 엄연히 구별된 부드러웠던 아이스케끼는 정말 맛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의 주전부리는 시장입구에 있던 번데기였다. 꼬갈 모양의 종이에 담아주었는데 짭짜래한 맛과 씹히는 번데기 속살은 맛이 일품이었던 것 같다.(난 그때 번데기의 궁합은 고동인줄 알았다. 항상 번데기와 함께 팔고 있어서)
그 옆에는 바나나를 팔고 있었는데 항상 그 옆을 지날 때면 먹고 싶은 것 중에 단연 톱이었다.
달성공원엘 가끔 갔었는데 공원 앞에 늘 있던 솜사탕(구름과자)을 파는 할아버지들에게 산 솜사탕구름과자도 참 맛났던 거 같다
그렇게 국민학교 5년을 보내고 구미국민학교에 왔다.
먹거리나 주전부리는 어딜 가도 비슷하다.
기다란 비닐캡 안에 내용물을 밀어서 빼먹는 아폴로 같은 것들, 달고나, 같은 것들. 그중에서도 유난히 기억에 남는 건 도시락이다.
겨울이면 당번이 있어 그날 교실에서 피울 난로의 연로인 땔나무나 갈탄을 교실로 가져와야 했다.
지금처럼 급식하던 때가 아니라 모두 양철도시락을 사 와야 했는데 도시락을 따틋하게 먹기 위해 너도나도 도시락을 난로 위에 얹어놓았다.
치열한 난로 가장자리 차지하기가 전국의 어느 학교든 벌어지든 시기였다. 뭐 반찬이라 해봐야 시어 빠진 김치에 콩조림, 아님 밥 위에 계란부침 하나나 소시지 정도만 있어도 일등이었지만... 그래도 유난히 맛있었던 것 같다.
아참 아침마다 받아먹던 병에 담긴 서울우유, 조심스럽게 종이덮개를 우유를 흘리지 않고 제거하는 게 하루시작의 키포인트였지ㅋㅋ
문득 교과서를 보다 보니 김치국물이 떠오르는 건 인지상정일까? 김치국물이 번진 교과서를 보는 것도 옛일이 되었다.
김치국물이 새지 않게 하기 위해 도시락은 늘 도시락보에 싸서 다녔고, 국물새는 반찬은 뚜껑 있는 병 속에 담아 다녀도 내 책에 김치국물이 번지는 건 채 두 달을 넘기지 못했다.
지금 생각건대 책만 깨끗했어도 공부를 무척 열심히 했을 것 같다 하고 느낀다.
당시만 해도 어른들을 보며 언제 어른이 되나 하고 생각한 적이 많았던 것 같다. 이젠 문득 나를 보곤 너무나 커버린 나 자신에 내 나이에 놀라곤 한다.
다시 조금이라도 되돌릴 순 없을까?
그런 것 같다. 어느 시인의 시구처럼 나이는 추억을 먹고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얼마의 세월이 지난 뒤 사람들은 또 지금을 그리워하겠지. 그리곤 이내 그럴 수 없단 걸 알며 체념하겠지.
만족할 만한 삶이란 누구에게도 없을 거야
모두가 늘 부족하고, 늘 후회되는 삶을 살지, 그래야 살면서 채울 게 있고 고칠 게 있는 거라고....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거지만 행복한 거란 내가 행복한 게 아니라 내 주변의 행복을 내가 볼 수 있는 게 더 큰 행복이란 고 생각된다. 가족이 될 수도 있고,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잠시잠깐 수십 년 전으로 시간여행을 다녀온 기분이다.
커피 한잔의 내음과 옛 추억이 행복한 오후의 한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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