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용서에 대한 짧은 고찰

좋은생각/좋은생각

by 이즈원 2024. 2. 18. 13:13

본문

용서란 적어도 사람에 대해서 하는 거지 야수 같은 자들에게 하는 건 더더욱 아니다.
그 용서는 상처를 치유하기보단 더 난폭한 야수를 만들 뿐이다


설령 측은지심이 발동하여 용서한다 하더라도 그건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에 한정되어야 한다. 전체를 상대로 역사를 상대로 반민족적인 죄악은 저지른 자들은 용서해서도 안되며, 처벌에 있어서도 공소시효가 없어야 한다.

친일청산이나 국정농단 같은 경우가 그렇다. 섣부른 용서로 이미 인간이기를 포기한 자들에게까지 인간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기를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들은 나쁘게 얻은 걸 지키기 위해 이전보다 더 악랄해질 뿐이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으나 그건 극소수일 뿐이다.

용서가 사랑을 실천하는 최고의 미덕은 맞아도 그냥 조건 없이 하라는 건 아니다.

다까끼마사오(박정희 전대통령 일본명)에 대한 존재를 확인시켜주는 사진

일본천황에 혈서로 충성을 맹세하고 만주에서 독립군토벌에 앞장섰던 과거가 경제개발이란 수식어로 다 덮어질 수는 없다. 설령 그게 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일지라도....
과거의 잘못은 업는 것으로 돌링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용서될 뿐이다
하지만 그 용서조차도 뉘우치고 사과하는 진정성이 없을 땐 기대하기 힘들다.
일본이 대한민국에 지금도 용서받지 못하는 이유와도 같은 것이다.

고 김창숙 선생 은 독립운동을 하다 체포된 후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앉은뱅이가 되신 분이다.

그분이 아무에게도 보살핌도 받지 못한 채 병원 골방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하는 자리에 5.16 쿠데타 직후 독립운동가들의 지지를 얻으려 했던 일본 관동군 출신 박정희가 나타났다.

그러자 당시 김창숙 선생은 박정희를 쳐다보지도 않고 돌아누웠다고 한다.

악인이 나쁜 짓을 안 하기를 바라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군사쿠데타 직후 독재정치와 부정부채로 사형이 언도된 전두환.

사형구형에 대한 면죄부는 전두환이 살아있는 얼마 전까지도 대한만국을 둘로 나뉘게 하는 갈등과 반목, 역사왜곡을 가져왔다.

그 섣부른 용서 하나가 악마가 은밀히 활개 칠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