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 내리는 시절 > 이즈쓰다
우산 없이 나온 길에서
몸만 축축하게 젖는 게 아니라
마음까지 촉촉하게 젖어든다.
장맛비에 잠기는 게
비단 잠수교 뿐이겠는가?
어부의 일손은 바다에 잠기고
농부의 애간장은 대지에 잠기고
하루벌이 인부의 걱정은
회색콘크리트 속에 잠긴다.
어떤 이의 마음들은
장맛비에도 타들어가는데
하늘에 구멍 낸 장난꾸러기는
이런 맘 이해하긴 하는 걸까?
장맛비에 젖는 게
우산 없는 사람들뿐이겠는가?
작은 우산 속에 반쪽만 들이민 채
그래도 즐거워하는 남녀는
비 피하는 게 목적이 아니라
붙어 있는 게 행복인게지
어떤 이들의 가슴은
장맛비 때문에 불타오르는데
하늘에 구멍 낸 장난꾸러기는
비에도 사랑불은 타오르는 줄 모르는 거지
세찬비에 찌든 때 씻기고
장마 그치고 해님 나면
몸도 마음도 뾰숑뾰숑 해질까?
생각에 아랑곳없이
비는 내리는데 불이나고
꺼지지 않고 타들어가고
좋은 때를 기다려 내려만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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