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문득 참 열심히 산거 같은데 돌아보면 무얼 하고 살았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아마 인생의 반환점을 돈 이들에게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 아닐까?
마치 42.195km의 마라톤 선수가 반환점을 돈이후 느끼는 감정 자신의 최선을 다했다고 믿지만, 아름다운 마지막 마무리를 위해 한번 더 신발끈을 동여매면서 가지는 지나온 것에 대한 리필과 살아갈 깊이에 대한 자기 다짐 같은 뭐 그런 것.
나쁘지도 않지만, 그리 좋은 것 같지도 않은 인생
이맘때면 우린 떨어지는 낙엽 속에 함께 지는 것 같은 질 것만 같은 먹먹함을 경험한다.
계절이 주는 미묘한 감정이라 위안도 해보지만 그게 사람이기 때문에 가질 수밖에 없는 감정이라는데 굳이 토를 달고 싶지는 않다.
작가도 그랬던 것일까?
이런저런 걱정만 가득 들어찬 가슴에 순한 바람길 하나 내고 싶은 날이다.(P64)
뻥 뚫린 고속도로 위를 질주하곤 싶지만 무언가로부터 억눌린 듯 막힌 듯, 느껴지는 삶의 중간에 시원한 바람길 하나 내고 싶지 않았을까?
바람 속에 들다는 총 6개의 테마로 나뉘어 있다.
삶에서 느꼈던 용기 없음에 주저함에 머뭇거렸릴 수밖에 없었던 지나온 날에 대한 회상과 후회를 담담히 옮기며 삶에 대한 긍정적 에너지를 충전시켜주는 (그때)"그랬더라면"
나 또한 막힌 세상 속의 일부로 때로는 정답 있는 세상을 원하지만, 그러하지 않더라도 행복할 수밖에 없다 라며 그 증거자료로 내 주변의 일상적인 관심사들을 끌어내어 설명하는 "바람 속에 들다"
무미건조한 삶 속에서 점점 사그라지는 자신과 무디어지는 감성에 대해 자객의 표현을 빌려 자가 충격적 메시지를 담은 "자객"
제대로 살아온 것 같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주의화되어가고, 욕심꾸러기가 되어버린 자신(현대인)에 대해 반성하고,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져주는 "길고양이들"
잊혀가는 아날로그 감성과 추억들에 대해 뒷간, 막걸리, 벙어리장갑, 검정고무신, 카메라 등의 옛 소품들을 빌어 담담히 풀어쓴 "도깨비 뜨물"
긍정적인 삶의 자세는 무엇인가? 올바른 삶은 무엇인가? 멋진 인생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생각은 늘 있지만 항상 동떨어진 채로 살고 있는 자신과 우리에 대한 부탁 누구도 완벽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조차 우리가 아름다워지기 위헌 필요충분조건이라 말해주는"아름다운 흠"으로 구성되어 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누구나 비슷한 경험이나 공통의 감성은 모두가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이가 경험이나 감성을 가진다 하더라도 그걸 풀어내는 방식은 다 다르다. 더러에게는 어설픈 비생산적인 감정 그 이상으로 대접받지 못하기도 한다.
문제는 우리가 대처하는 삶의 자세다.
분명 우리가 대처하는 방식과 생각에 따라 전혀 상이한 형태로 나타나기도 할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일상으로부터 일어나는 경험과 지나쳐 버릴지도 모를 작은 부분들로부터 자칫 우리가 먹고살아야 한다는 기본적 본능에 밀려 잊어버릴지도 모르는 잃어가고 있는 인간 본연의 자세와 순수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 같다.
"바람 속에 들다"의 책 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언어의 유희 몇 가지만 캡처해 옮겨본다.
'두려움은 원천일 어쩌면 나만을 생각하는 이기심에서부터 비롯된다. 자기를 잊고 공동체 전체만을 생각한다는 그들에게 있어 두려움 따위는 있을 리 만무하다.' ~ 개미세계의 모듬살이가 성공한 이유 ~ 그랬더라면 중에서
무수리보다 못한 그딴 중전은 이제 그만할래
차라리 날 폐비시켜줘
여자는 아직도 폐위되지 않았다.' ~ 결코 폐위되고 싶지 않은 행복한 투정을 옮긴 ~ 중전 유감 중에서
'삶의 길에는 지도가 없다. 어쩌다 길을 잘못 들어서도 다시 되돌아 나오도록. 세세히 알려줄 내비게이션도 없다. 길을 잃고 헤매어도 내 이름을 부르며 애타게 달려와줄 사람들도 없다. 오로지 스스로 찾아가야만 한다. 밀림처럼 쉽게 길을 보여주지 않는 삶의 길은 눈물로도 열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 부족한 인간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 ~ 길을 일다 중에서
'봄날 같은 연애를 꿈꿔본 적이 있다. 여태도 그 꿈은 가슴속 어디쯤 자객처럼 숨어있는 모양인지 명지 바람 살살 불어오면 한 번씩 가슴이 달싹인다. 자객은 어느 순간 불쑥 튀어나와 가슴을 온통 헤집어 나올지 모른다.' ~ 모태적 본능에 대한 일탈을 꿈꾸는 자신에 대한 책임회피 ~ 자객 중에서
'오랜만에 다시 글쟁이를 꿈꿔본다. 비록 그 꿈이 용만 쓰다가 풀지 못한 수학시험 같을지라도 속상해하거나 허탈해하지 않으리라. 느리게라도 꾸준히 가다 보면 언젠가는 가슴속 누름들을 내려놓게 되는 날이 오리라' ~ 소홀해지기 쉬운 마음속 꿈에 대한 자기 열망을 적은 ~ 심몽 중에서
'빨래를 하다 보면 아무리 애를 써도 잘 빠지지 않는 얼룩이 있다. 하다 하다 안되면 독한 표백제의 힘을 빌리게 된다. 그래도 안되면 세탁 소행이다. 그러면 십중팔구 말끔해져서 돌아온다.
빨래의 얼룩은 뺄 수 있다지만 마음의 얼룩은 대체 무엇으로 어떻게 빼야 하나?' ~ 순수함을 잃어가며 세상의 얼룩에 물들어가는 자신에 대한 반성을 담은 ~ 빨래 중에서
'녀석들의 삶이 우리에게 불쾌감을 주는 정도의 문제이지만, 녀석들에게는 생존이 달린 문제라는 걸 인식한다면 녀석들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지 않을까?' ~ 공존은 상호 이해를 필요로 한다.~ 길고양이들 중에서
'퓨전화 시대라지만 부디 옛맛과 멋이 더는 퇴색하지 않았으면' ~ 도깨비 뜨물 중에서
'삶에 쫓겨 팍팍해진 가슴을 별빛으로 씻고 달빛으로 닦고 싶다.'~ 잃어버린 밤 중에서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신발을 먼저 벗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머리보다 가슴이 먼저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 봄비 내리던 날에 중에서
'지름길은 목적지로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이자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현명한 선택일 수도 있다. 어쩌면 지름길은 편법이 될 수도 있다. 좀 더 효율적일 거라 믿지만 위험요소들이 군데군데 뱀처럼 꽈리를 틀고 있을지 모른다. 지름길은 평탄한 길이 별로 없다. 그래도 지름길의 유혹은 꿀처럼 달콤해서 외면하기가 쉽지 않다. 단맛에 이끌려 무작정 꿀통으로 날아들었다가는 꿀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벌의 신세가 되고 만다.' ~ 지름길 중에서
'겨울나무는 온몸으로 바람을 감당한다. 절대 피하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오히려 순명을 즐기는지도 모른다. 나이테를 닮아갈수록 나무들은 바람 앞에 더욱 당당하다. - 삶에 응하는 자세를 말한 ~ 겨울과 만나다 중에서
살아가면서 인간이란 생명체는 늘 갈등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불평을 달고 산다. 쉬이 만족하지 못하고, 쉽게 편하고자 한다. 바람 속에 들다는 그런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자기 고백 아닐까?
책의 말미에 나오는 어느 수필가의 옮긴 글이 유난히 가슴에 들어온다.
" 바람 부는 굼부리 소똥 비탈에 앉아 넋이 나가도록 함께 흔들려 보지 않은 사람을 영혼의 일촌이라 부르지 마라. 천지 사방을 흔드는 바람, 그 바람 갈피 갈피에 숨은 손톱만 한 꽃들의 눈물 자국에 엎드려 경배할 줄 모르는 이와는 차 한잔의 시간도 낭비하지 마라."
가을에는 영혼을 맑게 하는 좋은 책 한 권 읽어보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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