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
#사진앨범(대구국제보디페인팅 촬영분)
우리말엔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비유적인 표현이 참 많으며, 이런 경향은 고시조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상대를 배려하는 선조들의 심성이 직설적 표현보다는 간접적 표현으로 상대가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없던 시절 내가 살던 동네에서 흔히 어른들 사이에서 듣던 표현
' 아직(아침) 드셨어요? '
어른들이 아침마다 서로에게 하는 인사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먹을 것도, 의료시설도 별반 없었던 조그만 시골마을에서 이 인사의 의미는 오늘도 건강하게 뵐 수 있으니 참 좋습니다. 란 비유적 표현이었던 것 같다.
자고 일어나면 비명횡사하던 일이 다반사였던 시절. 이 인사는 '무사히 다시 뵐 수 있어서 다행이다.' 라는 표현이다.
어머니는 어릴 적에 내가 고집을 피우면 망태 아저씨가 몰래 잡아간다고 겁을 주곤 했다.
망태는 과거 고물 같은 걸 줍던 사람이 등에 매던 것으로 아이를 납치해 팔아먹는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던 때가 있었다. 코흘리개 아이들에게 그건 두려운 일이었을 거니
하지만 한 번도 잡혀간 적은 없었다.
때로는 그 잔소리가 그리워질 나이가 되었다.
이런 비유적인 표현들은 세월 속에서 모자지간이나, 친구, 지인들 사이에서 서로에게 애정이나 관심을 표현하는 하나의 소통방식이 되었다.
여러 해 전 세바시에서 김창욱 교수가 강연한 내용의 일부이다
밥묵고 차조심하고, 전화세 나온다" 며 끊자는 부모님의 얘기가
"사랑한다 보고 싶구나 바쁘겠지만 시간 내서 한번 오렴"으로 들리는 순간
부모님과의 소통이 비로소 이루어지는 순간이 온 거라는 의미이다
상대방을 이해하려면 그 사람이 쓰는 언어를 관심을 갖고 이해해야 된다. 소통은 거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누구에게나 말 못 할 어려움과 고통은 내재한다. 자신이 아니라 주변 때문에 라도 늘 존재하기 마련이다
옛날 어른들이 서로에게 보였던 정이나 호의는 이런 것들에 대한 배려이다.
요즘의 소위 많이 배우고, 잘 나가고, 한 자리씩이나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에겐 이것이 없는 것 같다.
이미 사라져 버린 옛이야기 인 것이다.
그들은 문명의 이기보다 더 많이 이기주의화 되어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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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유행했던 대한민국은 안녕하십니까?라는 문구 속에는 정말 살기 힘드니 어떻게 좀 해주세요 라는 국민들의 절규가 담겨있는 것이다.
나는 괜찮지만 내 주변이 이웃이 살기에 불편하다는 의미이다.
참는다는 비슷한 의미의 순응과 순종은 그런 의미에서 다른 것이다.
이해하고 나를 맞추느냐 어쩔 수 없이 복종하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양의 가면무도회, 탈춤 등은 본래의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자신의 본모습을 그 안에서 분출하는 행위이다. 바디페인팅도 마찬가지다. 신체에 단순히 색을 입히는 게 아름다움과 화려함을 나타내려는 게 아니라 그 안에 메시지를 담아 대중에게 전달하려는 예술행위인 것이다.
표현의 자유라는게 단순히 개인의 의사를 피력한다는 데에 있어어서 토를 달수는 없으나,모든 행위에는 나 뿐 아니라 다수도 그렇게 생각하고 인정한다는 타당성과 명분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건 그 때 정당성이 생기는 것이다. 언급했듯이 내가 불편하지만 이해하려 한다는 순응과 참을수 없지만 억누른다는 순종은 그런 의미에서 다소 차이가 나는 용어인 것이다.
그게 자발적이냐 수동적이냐 라는 행위의 동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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