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정교와 요석궁
#세기의 로맨스
궁궐에서 민가와 첨성대가 있던 계림 사이를 흐르던 내가 남천이었는데 월정교는 남천을 가로지르던 다리이다.
일출 및 일몰, 야경명소로 알려진 월정교는 조선시대 유실된 다리를 복원 2018년 2월 일반에 공개되었다.
안압지와 더불어 경주의 야경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주려나/나는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깎으려네(誰許沒柯斧 我斫支天柱).”
유학길에 해골물을 마시고 '마음이 곧 부처'라는 진리를 깨우친 원효가 돌아와 장 안에서 불렀다는 노골적인 구애요이다
얼마나 해학적 표현인가?
파계승과 미망인의 금기의 사랑
문헌에서 설사는 월정교를 건너 요석궁에서 요석 공주와 3일간 사랑을 했다고 한다.
기록에 의하면 당시 경주항교옆에 유교라는 목교가 있었는데 원효는 왕의 부르심에 일부러 물에 빠져 요석궁으로 가게 되고 공주와 인연을 맺고 삼일의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월정교 바로 앞 교촌마을은 신라의 국학이 있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나온 명칭이다.
후에 국학은 국자감, 향교로 이어진다.
교촌마을 내 경주 최부자는 노블레스오블리주를 몸소 실천한 부자 중의 부자로 손꼽힌다
원효는 아마도 궁리를 따라 이길 을 지나 요석궁으로 갔을 것이다.
세기의 로맨스의 주무대 요석궁.
이름이 같은 교촌마을 내 한정식 집이다. 가격은 무지 비싸니 참고하시고
원효는 법명이며 본명은 설사이다. 설사라... 음
요석공주는 태종무열왕과 보희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당대 최고의 문객이자 대사부인 이두식 표기를 만든 설총이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러브스토리에 대해선 역사서에 따라 다소 상반되게 표현되기도 한다. 철저하게 지배계층의 관점에서 쓰인 김부식의 삼국사기는 수도 중인 원효대사를 요석이란 여인이 유혹했다고 기술해 놓았다. 아마도 당시 지배 층의 사고로는 이를 인정하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요석공주가 결혼한 지 삼일 만에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과부가 되자 이릘 안타깝게 여긴 태종무열왕이 원효의 구애요를 핑계 삼아 둘을 이어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월정교의 남쪽문루와 북쪽문루는 연결되어 있으며
현판은 당대최고의 문장가 김생과 최치원이 쓴 글을 떠 와 제작하여 문루에 걸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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