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받아온 반공 교육 탓에 나도 북한을 무지 싫어하는 사람들 중 하나였다. 어른이 되고 나서 생각이 바뀐 건 우리가 경계하고 미워해야 할 대상은 다수를 이념 대립으로 몰고 가는 소수의 나쁜 리더들과 그들로부터 혜택을 입는 특권층들이란 것이었다.
우리가 21C를 사는것처럼 북한도 동시대에 살고 있다. 일부가 지속하여 온 무차별적 이념공세와 적대감 고취에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는 진짜로 적이 되어 가고 있다.
북한이 아무리 진실을 왜곡한다 해도 현대 문명의 이기는 진실을 쉽게 접하게 만든다. 남한의 인기드라마를 보고, 가요를 부르며 대한민국의 실상을 실시간으로 숨어서 모니터링하며, 비밀리에 화제를 삼을 거란 사실이다. 사실 체제가 다르고 추구하는 이념은 다를지언정 인간이 느끼는 가치는 별반 차이 없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나는 김정은과 10%의 북한 특권층 그리고 그들이 가진 권력이 북한주민을 통제하고 있다고 단언한다..
우리 또한 나쁜 리더들에 의해 여론이 조작되고 언론이 통제되며 종국에는 국정농단까지 자행되는 사실을 보지 않았던가?
우리는 왜 공산주의 자체를 혐오스럽게 여기는 것일까?
그건 어려서부터 받아온 반공교육의 영향도 커겠지만,6.25 사변의 참변과 그들의 만행에 대한 직접적 피해와 간접적 소문들, 그리고 청산되지 않은 친일파들이 이슈 전환용으로 내세운 빨갱이란 용어에 너무 길들여지고 세뇌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민주주의가 뭘까?
현재 다시 극우성향 이 권력을 잡으며 회귀하고 있지만 세계는 이미 오래전에 탈이념을 선언하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한계는 있지만 수정자본주의를 선택했고, 공산화된 베트남도 이와 다르지 않다.
반대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유행하는 협동조합이나 공동경영등은 공산주의 경제정책의 일부를 벤치마킹해 자본주의 식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다양성의 관점에서 볼 때 공산주의 반대는 민주주의 일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자유아 통제를 예외로 한다면 추구하는 목표는 거의 차이가 없다.
공산주의란 모든 의견이나 종교 등이 하나의 정치성향으로 집약되어야 한다는 이론인 반면 민주주의란 의견이나 종교 표현등이 다양하게 존중된다는 데서 차이가 난다 하겠다.
언급한 것처럼 나는 빨갱이란 단어에는 거리낌이 없다. 단지 그것들을 정당화 시 키키고 정쟁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부의 나쁜 인간들이 싫을 뿐이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좌파란 단어는 나쁜 용어가 아니라 변화를 희망하고 새로운 방향으로의 진전을 추구하는 일단의 정치세력을 의미하는 용어이다.
반대로 우파란 바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변화를 거부하고 옛것을 답습하려는 기득권층을 의미하는 용어일 뿐이다.
우린 이걸 정치가들에 의해 네 편 내 편의 용어로 오인해 알고 있을 뿐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경제개발에 따른 부수이익을 얻고 살아가는 우리
하지만 부지불식간에 북한을 닮아가는 것 같아 서글퍼진다. 차이가 있다면 조금 더 넉넉하다는 것과 개인의 의사가 자유롭게 반영되고, 투표에 의해 지역의 리더를 뽑는다는 정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닮은 구석은 너무나도 많다. 하지만 돌아가는 판세는 북한과 비교해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기껏해야 배부른 돼지와 배 곪는 늑대정도라고나 할까
공산주의를 지칭하는 대표적 용어는 일당독재이다. 북한 괴뢰정권 수립 후 북한은 공산당이란 일개정당이 행정 입법등 거의 모든 부분을 독식해 왔다.


박정희 대통령과 북한김시의 동상 비교해 보라 차이가 있어 보이는가?
우리는 어떤가?
경상도 전라도를 보자. 박정희로부터 시작되는 5.16 쿠데타 이후 그 이전은 빼더라도 경상도는 보수정당이 전라도는 진보정당니 독식하다시피 한다. 다른 의견이 여기에 끼어들 여지가 없었으며, 이들 정당의 추구하는 이념과 목표가 곧 지역사회의 의견이 되어왔다.(물론 올고 그름의 가치 차이는 있지만)이게 일당독재 아닌가?
그다음으로 전술한 김정은과 북한의 특권계층처럼 정당에도 1개 정당만을 묻지 마 식으로 지지하는 묻지만 지지층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그들의 특징은 변화를 갈망하면서도 스스로 변화를 막는 방어막이 되고 있으며, 잘못된 걸 알면서도 지역이기주의와 혈연 학연에 얽매여 잘못된 지역리더들을 선택하고 기꺼이 그들의 호위무사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거기에 특유의 고집이 더하여져, 내편이 아니면 적이고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 없는 적개심까지 내보인다는 것이다.
그 결과 경상도는 중앙당의 정치이념에 충실한 입시교육에 따른 전국 학생자살률 1위의 오명을 쓴 교육감을 내편이라는 이유로 뽑았고, 몇 해 전까지는 전국에서 초등 무상급식을 거부하는 지역, 포퓰리즘이라는 이유로 지자체로 뷰티 만 생지원금 이 잘 집행되지 않는 지역, 어떤 도시는 공무원 부패 지수가 선두에 매겨지는 슬픈 기록표도 받게 되었다.
고인 물은 썩고 경쟁 없는 정치는 독재로 이어지는 공산주의와 별반 차이 없는 정치풍토가 이어지게 된 것이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개인에 대한 우상화이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물론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박정희의 동상은 전국 각지에 새로 세워진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공은 뒤로 하고라도 개인에 대한 존경심과 우상화는 엄연히 다르다. 우리가 리더들에 대해 무분별하게 미화한다면 앞으로 우린 박정희 이상의 리더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모두가 박정희처럼 하려고만 할 테니까 말이다.
어쩌면 탄핵당한 박근혜도 부친으로부터 답습한 잘못된 정치가 정답이라 여기며 대통령직을 수행한 결과 지금과 같은 비참한 처지에 놓인 걸 지도 모르겠다.
북이 김일성 동상을 세우는 건 존경심과 경외심의 다른 표현이라 주장하지만 우리는 우상화의 일부일뿐 그 이상은 아니라고 부인한다. 마찬가지로 지역정서가 박정희를 존경하는 영웅시하는 의미로 동상을 세우지만 타 지역에서 구미를 바라보는 시선은 별로 달갑지 않다는 게 우리가 김일성 동상을 보는 시각과 매우 유사하다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몇 가지 유사한 걸로 체제 자체가 다르다고 북한과 동일선상에 놓는다는 건 억지 주장 이겠지만 이러한 정치시스템이나 정서는 북한과 별반 차이를 느낄 수 없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아닌가?
얼마 안 있어 지방선거다
유력후보들은 너도 나도 주기만 준다면 정당의 공천을 받으려 줄을 설거지고, 다양성이 존재하지 않는 지역들은 또 그들을 뽑아줄 것이다.
수십 년간 새로운 인물을 뽑자고 외치며 지역의 유권자들이 선택해 온 레퍼토리이며, 당선된 이들은 또 공천받은 정당의 눈에 들려고 지역보다는 정당 편에서 일을 할 것이다,. 설령 그게 상식과 이치에 부합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수족노릇을 책무처럼 해나 갈 것이다.
누구의 잘못인가?
그건 바로 유권자들이 그런 구도를 만든 것이다.
국민은 자기 수준에 맞는 정치가를 뽑는다고 했다.
작금의 경제상 화은 대전을 기점으로 이남과 이북으로 나뉜다. 상대적으로 피폐해져 가는 대전 이암의 지방들 여러 곳은 지방소멸대상지역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건 지역의 발전보다는 개인의 영달을 추구한 지역정치가들, 그리고 줄기차게 그들을 뽑아준 그 지역민들이 만든 공동의 작품이다.
위험천만한 말이지만
공산주의적 일방통행식 정치시스템나이나 정치의식에서 을 탈피해 경쟁과 토론이 정정당당하게 일상화될 수 있는 그런 지역으로 바뀌어야 한다.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모든 부문과 마찬가지로 경쟁이 되지 않는 독점구조하의 피해는 그곳에 속한 구성원의 피해로 이어진다.
그것은 오로지 민주시민임을 자처하는 지역 구성원 민들에 의해서만 바뀌어질 수 있다. 네 편 내 편의 접근이 아니라 무엇이 맞고 그렇지 않느냐의 접근방식, 잘못된 부분에 대한 과감한 시민들의 요구와 간접참여 및 감시, 투표를 통한 무능력 지역정치가의 퇴출 같은 고강도 시민참여를 통해 지역의 거수기 정치인들을 일하는 정치인, 이념에 찌든 정치인이 아니라 이상과 희망에 전력을 쏟는 정치인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독점은 공산주의 독제만큼이나 전체를 갉아먹는 독버섯이다. 하물며 모든 부문의 일번지라 불리는 정치독점은 그 피해가 다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다.
지역민들이 자세히 살피고 바르게 뽑아야 하는 이유다.
우리는 민주주의 국가의 열린 시민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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